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님은 자녀의 진로 걱정으로 상담을 오시고,
성년이 된 자녀를 둔 부모님은 자녀의 취업과 결혼 걱정으로 상담을 오십니다.
장성한 자식 걱정을 듣고 있다 보면 자식을 낳은 부모는 관에 들어 갈 때까지 자식 걱정 때문에 마음 편히 살지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성한 자식이라도 자식이 선택한 무수한 결정들과 현재의 모습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걱정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내가 낳고 키워낸 자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상담을 하면서 어쩌면 자식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현재 자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자꾸만 순탄한 길을 두고 옆길로 샌다고 하시는 분들이 들이미는 자녀의 사주에 부모 자리를 보면 대체로 그것이 기우일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상담을 오셔서 내미는 자녀의 사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녀의 밭이 되는 부모가 자녀의 사주에 있습니다.
사주에서 네 개의 기둥 중에 월주(月柱)를 부모 자리라고 합니다.
부모 자리를 보면 명주(命主)가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랐는지, 그 명주(命主)의 부모는 명주(命主)를 키우며 어떤 가치관을 심어주었는지, 부모덕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하나라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부족함 없이 키웠다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아이가 하나라 정말 부족함 없이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낌없는 응원과 지원을 해준 엄마가 맞다면 이 아이의 엄마자리에는 손상되지 않은 정인(正印 )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 사주를 들여다보니 부모 자리에 있는 부모님은 매우 강압적이고 엄한 부모였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많이 순화시킨 표현이고요. 옛날 표현으로 “매로 패 가며 키운 부모”로 보였습니다. 즉, 이 명주(命主)는 매로 맞고 자랐던 말로 맞고 자랐던 맞고 자란 사람입니다.
자신의 선택과 생각에 대해 부모님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지지를 받고 자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강압적으로 키우셨어요?”
제가 부모 자리를 보고 이 질문을 했을 때,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당황하거나 부정합니다.
어릴 때만 그랬다. 지금은 안 그런다고 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는데, 지금은 다 큰 자녀가 맞고 있을리 없으니 지금은 안 그러는게 아니라 못 그런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물론 성년이 된 자녀에게 죽을 때까지 그러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걱정하고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사주에 보이는 글자는 그것이 아이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해줍니다.
월지(月支)에 정인(正印)이 있는 사람의 사주를 제가 상견례 프리패스 사주라고 여러번 언급했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월지에는 정인(正印)이 있고 월간(月干)에 편재(偏財)가 있다면 이 사람은 어린시절 부모에게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입니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100% 했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100%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내 아이가 결혼할 상대의 사주에 월지에는 정인(正印)이 있고 월간(月干)에 편재(偏財)가 있다면
내 아이는 가정교육을 잘 받은 배우자를 고른겁니다.
상견례에 나올 사돈의 인성은 보장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월지(月支)에는 정인(正印)이 있고 월간(月干)에 편재(偏財)를 가진 명주(命主)의 부모는 올바른 가치관을 자식에게 심어주었으며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부모이자 자녀의 인생에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부모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부모는 자녀가 음악을 한다고 하면 부모는 이 아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주며 음악을 하는 인생에 아낌없이 지원을 해줍니다. 이런 부모님을 둔 사람이라면 일단 자존감이 높겠지요.
아이의 사주에서 부모가 보이는데 부모님들은 제게 와서 아이 탓만 하고 답답해 합니다.
그 아이에겐 분명 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사주에서 부모의 세력이 너무 강하면 자식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주 원국에 재(財)가 세력이 과하거나 인성(印星)이 너무 많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재(財)는 아버지요, 인성(印星)은 어머니입니다.
아이의 사주 팔자에 아버지와 엄마가 세력이 강하다는 건 아버지와 엄마를 뜻하는 글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뜻입니다.
사주는 조후가 중요합니다. 뭐든 많고 넘치면 없는 것만 못합니다.
내가 했던 무수한 잔소리와 간섭과 통제가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부모님의 경우 은퇴를 하고 기세가 꺾여야 하는 시점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례를 예로 들어 보면, 교수로 재직하시다 퇴직을 하신 분이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세력을 확장 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지나치게 활발한 활동을 하시기에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렇게 꺾여야 하는 시기에 기세가 오히려 강해지면 자식이 잘 안돼.”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분의 아들이 직업 없이 놀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 나이가 칠순을 넘긴 나이인데 저렇게 활동을 한다는 건 결국 자식의 기세를 끌어다 부모가 쓰고 있다는 겁니다.
한 집안에 내려지는 길흉(吉凶)의 질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 하나가 그 집안의 평균치보다 지나치게 잘 되면 그 집안엔 반드시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복이 다 갔다는 건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지 그 집안에 유독 복이 넘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형은 항상 전교 1등만 하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동생은 그저 그런 대학을 다니다 서른이 넘도록 취업도 못하고 있는 건 그 집안의 복을 형이 다 끌어다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잘된 형제는 나보다 못한 형제를 품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나 나 때문에 동생이 잘 안 풀린거라 생각해야 합니다.
운은 흐릅니다. 집안의 운도 할머니 할아버지대에서 아버지 어머니대로 다시 자식의 대로 흐르는 것이 순리입니다.
은퇴를 하고 사회활동을 접고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할 시기에 물러나야 자식에게 기운이 흘러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발복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나보다 못한 것 같고, 못 미덥고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에게 해주려고 하는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식은 부모 눈에 모자란 그 모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버지나 엄마의 세력이 너무 강한데 한집에 같이 살 경우 자식의 운의 흐름이 크게 나쁘지 않는데 이상하게 취업도 결혼도 순탄치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오시면 돈이 좀 들더라도 독립을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부모님이 오셔도 내보내라고 독립을 좀 시켜보면 취업도 결혼도 할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저렇게 빌빌거리는데 내 밑에 있으면 밥이라도 잘 얻어먹고 다니지 내보내면 사람 되겠냐고 하시는데 붙잡고 있으니 자식이 발복이 안되는 겁니다.
부모가 보는 자식의 모습이 전부일리 없습니다. 부모 눈에는 그저 부족해 보이는 자식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로 들어섰을 때 부모보다 사회활동을 잘 해낼 수도 있는 겁니다.
부모의 사랑이 없어도 부모덕이 없지만 지나쳐도 덕이 없다고 봅니다.
내가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 모를까? 싶으시겠지만 너무 가까우면 더 안보이는 법입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기대와 부모의 꿈을 투영시키고 있진 않으신가요?
나와는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자녀를 마냥 틀리다고만 생각하시진 않으신가요?
내가 낳은 새끼 내 맘대로 왜 못해? 하시는 부모님도 계시겠지만
자식도 한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부여된 본인의 삶을 살고 있으니 가장 가까운 부모의 역할은 길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자기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것이 부모의 첫 번째 역할일 것입니다.